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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본 백양사

18교구본사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박봉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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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9-08 18:52 조회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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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스님]

18교구본사 백양사 주지 무공스님

스스로 낮추어 대중과 소통…
"언제든 선원 돌아가겠다"

총림해제 직후 첫 주지 취임
본사주지가 조사전 부전 자청
예불 공양 울력 반드시 참석
교구·수행공동체 회복 진력

고1년때 부모 만류에도 발심
백양사 지근스님 문하로 출가
수행처 돌며 45철 참선 정진
누비옷 꿰매 입는 본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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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제18교구본사
고불총림 백양사의 지위가 바뀌었다. 

총림이 해제됨으로써
교구본사로서의 지위만을 갖게 됐다. 

방장 추천에 의한 주지 임명 방식이
산중총회를 소집해
후임 주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듬해 3월, 18교구본사 백양사를 이끌
주지로 무공스님이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무공스님에게
백양사 주지는 처음 맡는 소임이다.

무공스님은 주지 취임 이후
조사전 부전을 자청했다. 

선조사 스님들의
삶과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교구 대중을 이끌어가겠다는
각오가 담긴 밀행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예불, 공양, 울력에 빠지지 않는 것
또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공스님은
 “교구와 본사가 어려울 때
본사주지를 맡게 됐지만, 
평생 선방에 다니며 참선 공부를 하다보니
행정이나 살림을 잘 알지 못한다”며
 “살림은 소임을 맡은 스님들이
책임을 지고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대중 가운데 한 수행자로 살아가는
무공스님의 방식은 파격이다. 

출가 이래 마흔다섯 철을
참선 수행의 길을 걸었기에
보일 수 있는 면모다. 

무공스님의 삶의 궤적을 보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행보가 낯설지 않다.

무공스님은 열 네 살에 불과한
중학교 1학년 때
스스로 출가의 결심을 굳혔다. 

그 나이 발심출가는 흔치 않다. 
의지와 상관없이 절에 맡겨지거나
어쩔 수 없이 절에서 살다가
출가한 경우가 더 많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어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가보긴 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출가를 생각하지 못했다. 

중1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헤르만헤세의
 <고타마 싯타르타>라는 책이었다.

출가의 마음이 났을지언정
결행은 또다른 문제다.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 
우연히 목격한 한 부부의 사고, 
아장아장 걷다가
발을 헛디딘 어린 아이의 한 순간 실수, 
눈 앞에 목도한 자살한 사람을 보며
삶의 무상함이 사무쳤다.

 백양사 광주포교당 관음사에서
흐트러짐없는 위의를 보여준
상인스님의 모습
또한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무공스님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출가를 결행했다.
 출가의 각오를 어머니에게 말했을 때, 
어머니는 한참을 묵묵히 있다가
체념한 듯 밥 한끼 먹고 가라며 
5백원짜리 지폐 한장을 건넸다. 

오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오라는 말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섰다. 

출가하겠다는 고등학생에게
상인스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관음사로 달려온 아버지는
길을 걸으며 아들에게 
“정말로 꼭 가야하겠느냐”
하고 세 번을 물었다.

“네”라는 대답에 변함이 없자
아버지는 “그럼 가거라” 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관음사로 돌아오는 길, 
다시는 못본다고 생각하니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눈물이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돌이켜보면 그 때의 순간은
출가수행이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떨쳐낼 수 있었던 힘이 되곤 했다.

하루 두 번 뿐인 버스를 타고
백양사 산문에 이르렀다. 
백양사는 받아주지 않았다. 

부모의 허락을 받고 왔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타박을 주며 허드렛일을 시킨지 3일, 
그제서야 출가를 허락받았다. 

무공스님은 
“집을 몰래 나와 출가하는 경우가
많은 시절이었고
앳된 학생의 모습을 보고
힘들면 금방 돌아 가리라 여겼던 것”
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행자가 들어온 백양사는
상좌 삼기 경쟁이 붙었다. 
내복을 사다주는 스님, 
양말을 선물하는 스님, 
셔츠를 주고 가는 스님…. 
많은 스님들이 뇌물 공세를 폈다. 

정작 행자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었다. 
선방에 다니다가 그림을 그리며
세간의 문인화가 인사들과 교유하는
지근스님에게로 향했다. 

의재 허백련, 남농 허련 선생과 같은
걸출한 인사들도 적지않았다. 
그런 지근스님은 밝게 웃으며 
“행자님”하고 부르는 것이 정감이 있었다.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었으나
은사 지근스님과는 오래 함께 하지 못했다. 
지근스님이 젊은 나이에 열반에 들었다. 
가수 남진의 친가가
은사 스님과 인연이 깊어
부도비용을 내기로 약속 했다. 

무공스님은
은사 스님의 부도를 크게 만들었다. 
그러나 약속한 비용을 받지 못해
모두 빚으로 남았다. 
무공스님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다니던 선방을 잠시 접고
일본과 미국을 오가는 원목선 선원으로
 6개월간 일하며 쓴맛을 봤다.

무공스님은 백양사 전통강원을 수료한 뒤
줄곧 인연처를 찾아 제방의 선원을 다녔다. 
첫 안거를 난 불국사 불국선원은
가장 많은 철을 보낸 수행처다.

 언제나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에게 받은
 ‘조주무자(趙州無字)’로 불리는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 화두를 들었다. 
망상 없이 화두를 드는 일이란
참선 초심자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리와 무릎의 조복을 받으려면
서너철은 자신과 싸워야 한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망상을 떨치고
화두를 챙기기를 반복하다보면
상기가 돋기 십상이다. 

당시 불국사 조실 월산스님은 
“상기를 이고 사는거보니
그래도 공부 좀 하는 놈인가보다”
하고는 많은 가르침을 준 어른이다.

1989년 불국선원에서
겨울안거를 날 때의 일이다. 
분명히 조주무자 화두를 들었는데, 
망상과 화두를 오가다가
어느 순간
 ‘부모미생전본래면목
(父母未生前本來面目)’ 화두를 들고 있었다. 

월산스님에게 찾아가
 “서옹큰스님이 주신 조주무자 화두를 드는데
망상과 함께 
‘부모미생전’이 방해를 합니다”
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월산스님은 전생인연 화두를 설명하고는
가로막는 ‘부모미생전’을
당분간 들어보라고 일렀다. 

조실채를 나서 신발을 순간
모든 망상이 사라지고 화두일념을 맛보게 됐다.

백양사 주지 소임을 맡은지 1년, 
무공스님은 여전히 참선 공부가 그립다. 
환갑을 넘은 나이지만
당장이라도 주지 소임을 내려놓으면
선방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이 확고하다.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만큼
거추장스러운 일도 없는 일이다. 

전 해인사 방장
혜암스님 회상에서 공부할 때
노구에도 좌복에 앉아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참어른, 참수행자상을 알 수 있었다.

세간은 봄이 왔다지만
산중은 여전히 한기가 남아있다.
 여기저기
꿰맨 누비옷을 입은 무공스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검소함이 배어 있는 생활습관에서도
수행자의 기품이 묻어난다. 

얼마 전에도
신발바닥을 바꾸러 찾아간 신발가게에서
이제는 더 갈 수 없으니 그만오라고 했다고 한다.

1989년 사서 일곱 번째 바닥을 바꾸었으니 
22년을 함께한 신발이다. 
무공스님에게는 
1990년 한 신도가 자녀들의 이름으로
공양한 누비옷도 아직 가지고 있다. 
다 헤지고 낡은 누비옷에
청빈한 수행자의 삶이 배어있다.

무공스님은 총림 해제 직후
제18교구본사 백양사 주지를 맡아
수행공동체 복원에 힘쓰고 있다.

조사전 부전을 자청해 기도하는 등
스스로 몸을 낮추고
대중과 함께 예불과 공양,
울력을 함께 하는
본사주지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 무공스님은

18교구본사 백양사의
광주포교당 관음사에서 신심을 키웠다.
1977년 백양사로 발심출가한 이래 
1978년 지근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백양사 전통강원을 수료한 
1983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불국사 불국선원에서 첫 안거를 난 이후
대흥사, 내소사, 불갑사, 백장암, 
백양사, 운문암 등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했다. 

조계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잠시 활동했으나 다시 선원으로 돌아왔다.

2020년 백양사 주지를 맡아
객실 복원, 대중처소 개설 등
수행공동체 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불교신문

박봉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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