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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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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2-17 07:02 조회1,7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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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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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16.

계곡 물소리가 바로 부처님 설법이네


여름도 이제 삼복으로 접어들면서
만물이 참으로 무성하게 성장하고 있다.

이 우주 삼라만상에는
생물이 생존하는 별이 많이 있으리라 추정하지만
우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
지구야말로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물의 생존을 보여주고 있는 별인 만큼
지구에서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바른 생각으로 잘 살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과거에도 지역마다
특성이 있는 문명을 발생시켰지만
현대의 과학문명만큼 지역을 초월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경우는 없었다.

이렇듯이 현대 과학문명은
전 세계를 하나의 문명권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따라서 과학문명 자체를 어떻게 잘 이용하느냐,
또는 어떠한 바탕 위에서
문명을 재창조해 가느냐에 따라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인류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도 있으며
파멸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문명을
어떠한 원리(原理)바탕에서 재창조 하느냐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과학문명의 바탕에
원리를 제공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서
결국 사유하는 자기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존재.'
라고 하는 사유의 원점에 도달했다.

이는 자신은
‘자기. 이성. 오성. 감성적으로 사유하는 자신’
이 분명하므로
사유하는 자신이
인식하는 대상이나 물질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와 같다.

즉, 이성이 확실한 존재라고 한다면
그것을 인식하는 물질도
존재한다는 것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우주 근본원리를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二元論)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원론이란
‘사유하는 정신은 목적론적’이고
‘연장(延長)하는 물질은 기계론적’으로
보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유하는 정신은 주인이되고
물질은 도구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유하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것이 암암리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데카르트 철학이다.

데카르트 철학을 이성철학이라고 하지만
이성의 밑바닥에는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
이성적 인간이 대 자연을 지배한다’
는 의지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 철학에서 말하는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인 사상에는
이미 생명력이 배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적인 대립 속에서
‘정신과 물질’은 상호 생명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명관은 없고
무엇인가를 지배하겠다는
욕망만으로 살겠다는 철학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가
과학문명의 바탕이 되었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생명관이 없는 철학으로
인류가 역사를 창조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캐나다에서는 비만 오면
강에 사는 물고기가 다 죽는다고 한다.
공업이 발달한
미국의 오염된 공기가 북풍을 타고 날아가
캐나다에 산성비가 되어 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기가 오염되거나 바다가 오염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물속의 생물이나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들이 죽게 된다.

어떤 지역의 강이나
호수, 토지가 오염되었을 때는
국가의 힘으로
그 오염을 정화해서 회복시킬 수 있지만
대기오염과 해양오염은
한 국가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다.

전 세계가 다 함께 협력해서
미리 방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를 오염시키지 않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오염시켜
우리나라에까지 오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언젠가 소련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핵 누출사고로 피해가 컸다고 떠들썩했는데
이러한 대기오염과 해양오염은
한 국가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전 인류가 각성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생물이 결국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과학문명을 뒷받침해 온 철학은
결국 현대 사회에 당면한
공해와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이렇듯이 인간에게 불법은
‘어떠한 것이 참으로 현명하고 명확한 것이냐’
고 묻고있는 것이다.
또 현실은 개인적 주관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모호하고 불안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이
불안정한 것을 초월하고,
심지어 인간의 무의식까지 초월해서
명확한 근본자리를 찾는 것이
종교이며 철학인 것이다.

또한 불법은
어렴풋하게 잠에 취한 듯,
술에 취한 듯 사는 게 아니라
‘명확하게 진실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진실한 자기 능력,
즉 스스로 성실한 힘을 가지게 하는 것’
이라 믿고 행동하는 철학이며, 종교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법은 인간의 의식과 생활은 다 거짓과 고통이며
심지어 인간이 가진
무의식도 초월한 경지에서 출발한다.

즉 우주의 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것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이러한 절대경지까지도
오히려 완전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브라만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철학이나
다른 종교의 신(神)까지도 초월해 버려서
자유자재한 대부정의 끝까지 가버릴 지도 모른다.

그와 같이 하다 보니까
자기도 없고 우주도 없고
모든 대립이 끊어져 버려
하나도 없는 자유자재가 되는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가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법신(法身)이 아닌가.

溪聲便是廣長舌
山色豈非淸淨身


소동파는 일찍이
우주의 실상이 바로 청정한 법신이라고 했다.
그러한 경지를 해결한 것이
바로 선(禪)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지에서 살 때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과 같은 근본적인 존엄을 갖추고
대 자연을 바라라볼 수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일본불교의 선종을 중흥시킨
백은(白隱) 선사란 분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매우 숭배하는 도인이었다.

일본의 민족성과 문화는
깊이가 없는 점이 있지만
어쨌든 일본에서는
부처님과 같은 숭배를 받는 백은 선사였다.



이 백은 선사가 젊어서 머물렀던 절 앞에
두부 장수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 사이에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 출가 안한 딸이 배가 부르기 시작하더니
아기를 낳았다.

아,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될 말인가!

그래서 부모가
매우 걱정을 하고 꾸지람을 하고 난리가 났다.

이 처녀는
백은 선사와 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모가 화가 나서
아기를데리고 백은 선사에게 가서

“스님의 아기니까 받으시오.”

라고 말하고는
아기를 백은 선사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백은 스님은

“아, 그렇소.”

하고
아무 말 없이 그 어린 아기를 받았다.

그런데 아기는 젖을 먹여야 할 것이 아닌가.
백은 선사는 아기를 장삼 폭에 싸고
동네 우물가로 다니면서 젖을 얻어 먹였다.
그러니 세간에서
얼마나 스님의 흉을 보겠는가.
처녀는 그 날부터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잠도 못 자게 되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지만
부모가 백은 선사를 부처님처럼 존경하니까
그같이 말하면
자기를 용서해 주려니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백은 선사의 아이가 아니고
이 아무개의 아이입니다.”

그러자 부모가 깜짝 놀라며

“아! 우리가 너무 큰 죄를 지었구나.
아기를 빨리 데려와야겠다.”

하며
백은 선사에게 가서

“아기를 돌려주십시오.”

하니
백은 선사는

“아, 그렇고?”

하면서
역시 아무 말 없이 아기를 되돌려주었다.




백은 선사가 모든 허물을
스스로 뒤집어쓰면서도 아기를 보살핀 데에는
불법의 자비정신과 인욕을 실천한 깊은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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