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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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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2-16 07:07 조회1,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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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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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15.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아라


모두가 아는 것처럼,
오늘날 인류는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급속한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해
생활은 윤택해지고 편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적인 발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 인간의 정신적인 원리(原理)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심각한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 풍부한 물질로 인해
인류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배타적 이성, 이기주의적인 생각만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세계는 멸망하느냐,
아니면 위대한 역사를 재창조하느냐의
갈림길에 직면하게 되었다.

19세기 헤겔이나 마르크스와 같은
서양 철학자들은
유럽의 정신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에
이르는 철학자들이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이성’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였다.

이러한 ‘이성’의 근본 바탕에는
어떤 의지가 잠재해 있었는데,
이 의지는
‘세상 어떤 모든 것을 지배하겠다’는
인간의 욕망의지라고 하였다.

즉, 이성이란
하나의 가면에 불과한 것이며
이들의 그 이면에는 강력한 ‘지배의지’가
이성이란 전제 아래 숨어 있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오늘날의 ‘이성’이라는 것은
과학, 기술적인 이성으로
그 밑바탕에는
대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려는 것은 물론,
인간까지 정복하고자 하는
지배의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했으며,
니체도 이러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적이 있다.

니체는
‘이성의 바탕에는
무엇인가를 지배하려는 의지가
숨겨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말해
인간의 권력을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시대가
대 자연과 인간을 도구화하여
서로가 서로를 정복, 지배하겠다는
욕망만으로 살아간다면,
핵무기 등
무서운 무기가 현실화된 이 시점에는
더 이상 인류는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제일 시급한 문제는
인류의 평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서양의 이성에 대한 ‘정신원리’로는
결코 평화를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이
오늘날의 동. 서양 석학들의 주장이다.
이는 서양 철학자들이 흔히 이성을 두고,
‘이성, 이성’이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는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강력한 지배의지가 숨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참다운 인간상을 찾는 데는 어려운 한계가 있다.

이는 결국
인간 스스로 절대 모순에 빠져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서양의 실존철학은
절망에 빠진 인간을 결코 구제할 수 없는 것 이다.

그런데 동양의 선(禪)이란 것은
인간의 욕망은 물론, 이성까지도 초월한
‘근본생명체(根本生命體)’를 구현하는
참다운 ‘인간성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근본생명체,
즉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으면
전 우주는
전일(全一)한 근본생명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산천초목이 실개성불(悉皆成佛)’
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공생대각중(空生大覺中)
여해일구발(如海一漚發)’
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허공의 무변한 우주도
근본생명체인 대각(大覺)에서 나온 것이므로
무변허공도
근본생명체인 대각에 비한다면
큰 바다의 한 물거품에 불과하다’
는 뜻이다.

이와 같이
전 우주의 한량없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이며,
그 생명체의 본래(本來)자리에서
자비심(慈悲心)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불교정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비의 원리로 역사를 재창조할 때
비로소 세계평화는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반대로 타 종교관은
‘선(禪)에서 나온 대자대비(大慈大悲)의 정신’
이 아니라
‘신(神)이 식물과 동물을 만들었으며
나중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대 자연을 비롯한
모든 물질과 형상들이
오로지 인간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모든 만물이 모두 평등하다는
‘절대평등(絶對平等)한 생명관’을 가지고 있어
모든 개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근본생명체로 보고 있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

서양의 중세유럽은
신에게 절대 복종하는
신본주의(神本主義)를 믿어 왔다.

때문에 중세기를
흔히 신이 인간을 노예화시킨 암흑시대라고 한다.

그 후 인간은 인지(人知)가 발전하고
인간 본위로 살자는 자의식(自意識)이 생기면서
인간은 비로소
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적으로 인지(人知)를 개발,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까지 서구는
이러한인간성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과학문명을 발달시켜 오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또다시 복잡한 과학문명에 예속됨으로써
인간은 과학문명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인간 스스로 자주 정신을 확립하여
주체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현실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현재 세계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절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선(禪)이
서양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의 참모습을 완전히 밝힐 때에
그 참모습은
우리의 감각과 이성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절대자 또는 형이상학적인 원리까지도 초월하여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자아를 찾게 되며,
이성도 감성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로써 전 인류가 한 생명체로 작용하게 되며,
전 우주가 하나의 근본생명체가 되어
훌륭한 역사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동양정신의 심오한 진리관(眞理觀)이다.

이러한 자기의 참모습에 대해
현대 심리학에서는
우리가 주관적으로 늘 경험하는 의식,
그리고 그러한 의식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무의식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또한 개개인에게는 상호 공통되는
무의식의 밑바탕이 있다고 해서
융은 이것을
‘집합적 무의식’이라고 표현했던 적이 있다.

융은 세상을 떠날 때
제자들을 불러 놓고 유언하기를
“나는 지금까지
한 가지의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그것은 집합적 무의식까지 초월한
인간의 참다운 바탕인데
이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터인데도 깊이 연구하지 못했다.
이것을 연구해달라”
고 했다.

그리하여 서양의 심층심리학은
집합적 무의식까지 연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록 집합적 무의식을
넘어선 경지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집합적 무의식을 초월한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믿게 되었다.

선(禪)에서는
참선을 통해서 ‘깨쳤다’,
‘견성(見性)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의식과 무의식은 물론,
융이 말하는 집합적 무의식까지 초월해서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은 바로 그 자리를 말한다.

그 자리는
서양의 사상가들처럼
인간의 한 부분만을 가지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나 감성은 물론이고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자유자재한 생명체인
우주의 실상을 밝히는 것과 같다.

이렇듯이
우리가 자기의 참모습을 깨달아서
세계사에 이바지하는 것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부디 의식과 무의식을 초월하고
집합적 무의식까지 넘어서
참다운 인간상을 체득해야 한다.

끝으로 선의 본분견처에서
제철직지(提掇直旨 : 들어서 곧바로 가리킴)
한 법문을 들어 보이겠다.




 남전선사는 순세(順世) 후에
산 밑의 한 마리 물소가 되어서 가고
각진국사는 순세(順世) 후에
백암산(白巖山) 속의
한 마리 호랑이가 되어서 갔다.

두 분의 큰스님이 이렇게 갔으나

이르라,
이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잠시 있다 이르시되

껍질을 벗어버린 호랑이는
하늘로 뛰어 날아가고
바다 밑의 진흙소는
철마(鐵馬)를 낳았도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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