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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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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2-08 07:16 조회1,7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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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서옹 큰스님 법문집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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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 법문집 [사람] 09.

참선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


백양사에는
쌍계루(雙溪樓)라는 유명한 누각이 있다.
그 누각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고승과 명사들의 시(詩) 선판이
100여 개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6 . 25 전쟁 때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선판 중에
고려 말 충신으로 유명한
정몽주 선생의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이제 백암승이 시를 구하는 것을 보고
붓을 잡고 잠겨서 시를 읊으려 애를 쓰지만
능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이 여긴다.

청수 스님이 누각을 일으키니
이름이 비로소 무겁고
목은 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더했도다.

안개빛이 아득히 비단처럼 깔리고
저무는 산은 붉게 물들었는데
달그림자에 배회하니 가을물이 맑도다.

오랫동안 인간세계에서
근심걱정이 뜨겁게 번뇌하니
옷을 떨치고 어느 날에
그대와 함께 이 누각에 오를꼬.

求詩今見白巖僧 把筆沉吟愧不能
淸叟起樓名始重 牧翁作記價還增

烟光縹緲暮山紫 月影徘徊秋水澄
久向人間憂熱惱 拂依何日共君登

이 시에서 ‘그대’는 임금님이다.
고려 말,
나라가 망하는 어지러운 시기에
어느 때에야 임금님을 모시고
쌍계루에 오를 수 있도록
나라가 편안해지겠느냐’를 걱정한 시다.

옛날의 위대한 정치가나 충신은
개인의 부귀영달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일념으로 사심 없기를
속기(俗氣)를 초월해서
자연과 더불어 한마음이 되고
인간 근본바탕과 하나가 되었다.

정치도 깊이 들어가면
개인을 초월해서 인간 근본바탕에서 나오고
사상, 윤리, 예술도
인간의 지(知). 정(情). 의(意)의 활동이며
거기서 깊이 뚫고 들어가면
인간을 초월한 데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교도 초월한
인간의 순수한 본심의 정감에서
위대한 예술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교만으로 따지면
간판글씨는 너무나도 완벽하지만
인간의 순수한 정감,
정신바탕이 결여돼있기 때문에
예술적으로는 무가치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상이나 문화나 예술 등
모든 것이
인간의 근본바탕 자리에서
우러나올 때 훌륭한 것이며
근본에 들어가면
사상이나 정치, 예술이 한바탕이다.

그 근본바탕자리를 ‘자연이다, 신이다,
조화 또는 하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며
절대통일의 바탕이 된다.

종교도
순수한 인간의 근본바탕에서 나올 때
비로소 참종교가 되는 것이다.

가령 차 마시고 잠자고 밥을 먹는
살아 있는
순수한 인간 생명체를 중시하지 아니하고
학문적으로만 논하려 하니
세상과 멀어져
현실과 유리된 종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의 근본바탕에서
현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또 종교가 현실 과 유리되어 버리니
종교가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현실 사회에서는
정치. 도덕. 윤리가 퇴폐해지고
예술 사상이 깊은 경지에 들어서지 못하고
천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와 같은 혼탁한 세상일수록
종교의 바탕에서
문화와 역사를 창조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는
과학 만능주의시대에서 모든 문제가
과학의 발달로 해결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과학의 한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가령, 과학을 맹신하는 과학자일지라도
사랑하는 아들딸이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는
점을 치고 굿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죄악문제는
과학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한계에 부딪혀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을 때
인간을 초월하며
인간 근본바탕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종교이다.

가령 불교는
인간의 한계를 자각하여
인간은 전부 거짓이며 허망한 것이며
죄악 덩어리라고 판단하며,
기독교는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원죄를 타고났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교적인 사실들은
신화적이어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 인간의 극한 상황을 자각해서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가
여타의 종교와 다른 점은
인간을 안으로 초월해
인간근본의 마음자리,
본래의 참모습을 스스로 해결해 낸다는 것이다.

즉 자력종교(自力宗敎)인데,
그 자리에 죄악이 없으며
나고 죽는 것이 없는 자유자재한 절대경지이다.

반면 다른 종교는
인간을 밖으로 초월하여
인간 밖의 절대자에게
의지하고 귀속한 피조물이며
절대 복종해야 하는 타력종교(他力宗敎)이다.

현대 과학자들은
종교를 덮어놓고 미신이라 하는데,
이것은 과학의 한계를 모르는 생각이며,
오히려 과학을 깊이 아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한계는 종교로서만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가령 어떤 어머니가
현대의학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자식의 병을 고치려고
목신이나 바위 덩어리 앞에서
기도를 하고 굿을 했는데
얼마 후 자식이 완쾌되었다.

자식을 살리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일념이
신력을 입어서 꼭 낫는다는
확고한 정신으로 바뀌고,
그런 신념이 병자에게로 옮아가서
병자 또한 자신이 꼭 낫는다는 신념을 갖게 되면
죽음에 임박한 생명을 회복할 수 있다.

그것은 기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목신이나 바위 덕분이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는 정신력에서 온 영험 때문이다.

물론 목신, 바위에 비는 행위 자체는
비합리적인 미신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관세음보살신앙이
미신과 어떻게 다른가 알아보자.

관세음보살은
우주생명체,
인간의 근본바탕의 진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생사와 시공을 초월한 한량없는 영원,
절대적인 본래의 우주생명체를 법신불이라 한다.

법신, 그 자리를 잘 공부하고 수행하야
반야지혜를 깨달으면 보신불이 되며

그 자리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화신불인데
관세음보살은
그 법신불. 보신불이 구족(具足)한 화신불이다.

진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 생사가 없는 그 자리에서
관세음보살도되고
산신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병도 없고 생사도 없으면서
또한 병을 앓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자유자재한 부처님 세계인 것이다.

하루를 살더라도
근본 그 자리에서 사니까
자유자재하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가 있는데
이성, 분별자리에서 껍데기만을 볼 때는
모순되고 비합리적으로 보여
미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참종교는
감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이성도 초월해
영성자리에 들어가야 하는데,
불법의 극치는
영성자리도 초월해서
무엇에도 걸림 없이 자유자재로 사는 것이다.

그러나 미신은 초능력을 믿고,
초능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옛날

황벽 스님이 천태산을 오르다가
눈에서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한 스님과 동행하게 되었다.

마침 장마철이어서
계곡 물이 한 길이 넘게 불어나 있었는데
그 스님은 태연히 땅을 걷듯 건너가서는
황벽 스님께 건너오라고 손짓하였다.

황벽 스님은
“진작 네가 소승 나한님인 줄 알았다면
네 정강이를 분질러 버렸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요망스럽게 신통을 부려
물을 건너감을 꾸짖으니,

그 스님이
“참으로 대승법기이다”
라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와 같이 참선은
부처님 경지도 초월해서
자유자재하게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고 하는
평상스러운 것이다.

법문을 하나 더 들겠다.



 운문 스님이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건곤의 안(乾坤之內), 우주 사이
그 가운데에 한 보배가 있으니
형산(形山)에 숨겨져 있도다.


등롱(燈籠)을 들고 법당 안으로 향하며
삼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로 오도다.”



이와 같이 법문을 했는데
참선의 경지는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초월하고
영성을 초월한 그 자리,

근원적 사실이지
허무맹랑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소리라고 하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는 소치이다.

과학도 깊이 들어가면
이러한 경지를 밝힐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설두(雪竇)스님이 송(頌)하기를

보고 보아라.
옛 언덕에
어떤 사람이 낚싯대를 잡고 있는가.

구름은 뭉게뭉게 드리웠고
물은 아득하여 넘쳐 있도다.
밝은 달 갈대꽃을 그대는 보라.


내가 여기에 대하여 착어(着語)하겠다.

위음왕(威音王) 이전에는
세 다리의 무쇠말(鐵馬)이
발굽을 놀려 행하고
위음왕 이후에는
운문노인이 소식을 끊었도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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