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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 5-22.임제의 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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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7-27 05:32 조회1,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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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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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行錄(행록)

임제의 약전


임제스님은
휘(諱-이름)는 의현(義玄)이고
조주(曺州)의 남화(南華)사람이시다.

속성(俗性)은 형(邢)씨이다.
어려서 보통 사람보다 빼어나
특이하고 성장하여서는 효행으로 유명했다.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서는
교종(敎宗)의 강원에 있으면서
세밀하게 계율을 연구하고
널리 경(經)과 논(論)을 깊이 연구했다.

그런데 갑자기 탄식하고 말했다.

“이것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는
약방문에 지나지 않다.
교(敎)밖에
근본 마음을 전한 종지(宗旨)는 아니다.”

바로 선종으로 개종하고
선지식을 찾아 행각에 나섰다.

처음에 황벽스님을 친견하여 참선하고
다음에 대우스님을 참견했다.

그 때의 기연의 어구(語句)는
행록(行錄)에 실려 있다.

황벽스님의 인가를 받고서는
바로 하북(河北) 지방에 가서
진주성(鎭州城)의 동남(東南) 모퉁이
호타하(滹沱河) 가까이 있는
작은 절의 주지가 되셨다.

그 절의 이름이 임제이니
강나루에 임(臨)한 지형을 따라서
이름 지은 것이다.

그때에 보화스님이 먼저 그 곳에 있어서
거짓 미친 것처럼 해서
대중 가운데에 섞여서
성인인지 범부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임제스님이 그곳에 가시니까 보좌했다.

임제스님이 교화를 왕성히 하자마자
보화스님은 온몸으로 가버리셨다.

이것은 소석가(小釋迦)라는
앙산스님의 예언과 똑같이 된 셈이다.

마침 전쟁이 일어나서
임제스님은 바로 거기를 버리고 가셨다.

장군 묵군화(將軍 黙君化)는
성 안에 있는
자기 집을 기부하여 절을 만들고
역시 임제원(臨濟院)이라 이름 짓고
임제스님을 영접하여 계시게 했다.

뒤에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결연히 남방(南方)으로 가서
하북부(河北府)에 이르셨다.

부주(府主) 왕상시(王常侍)는
스승의 예로써 맞아들였다.

거기에 머무신지 오래지 않아
바로 대명부(大名府)의
흥화사(興化寺)에 오셔서 동당(東堂)에 계셨다.

임제스님은 앓지도 않고
갑자기 하루는
옷을 단정히 하시고 기대어 앉으셔서
삼성(三聖)과 같이
문답하여 마치시고 고요히 가셨다.

때는 당(唐)의
함통팔년정해(咸通八年丁亥, 서기867)
정월 십 일이었다.

문인(門人)들은
임제스님 전신(全身)을
대명부(大名府)의 서북 모퉁이에
탑을 세워서 모셨다.

혜조(慧照)선사라는 시호(諡號)와
징영(澄靈)이라는
탑호(塔號)를 칙령으로 받았다.

합장 예배하고
임제스님 전기대략(傳記大略)을 적는다.


진주보수사(鎭州保壽寺)에 주(住)하는
사법제자(嗣法弟子) 연소(延沼) 삼가쓰다.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終.


※※※ 주 ※※※※※※※※※※※※※※※

1)조주남화(曺州南華) :
조주는 산동성(山東省) 연주부(兗州府),
남화(南華)는 연주부
단현(單縣) 이호성(離狐城) 부근이다.

2)거어강사(居於講肆) :
교종의 강원에서
불교학을 연학(硏學)한 것을 이른 것.

3)비니(毘尼) : 율장(律藏)의 뜻.

4)경의유방(更衣遊方) :
선종으로 개종하고
행각수행(行脚修行)한다는 뜻.
경의(更衣)는 선종의 승복으로 고친다는 뜻.

5)태위묵군화(太尉黙君和) :
태위(太尉)는 무관의 최고위(最高位).

6)하부(河府) : 하북부(河北府).

7)대명부흥화사(大名府興化寺) :
대명부(大名府)는 건주(鍵州).
흥화사(興化寺)는
임제스님의 법사(法嗣)인
존장(存獎)이 주지하던 사찰.

8)함통팔년운운(咸通八年云云) :
서기 867년. 맹추월(孟陬月)은 정월.
적년(寂年)에는 이설(異說)이 있다고 한다.
**조당집(組堂集) 권19**
**송고승전(宋高僧傳) 권12**
**전등록권12**
**광등록 권11**
**운봉연보(雲峰年譜)**에는
다 함통(咸通) 7년 병술 4월 10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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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錄(행록)

臨濟慧照禪師塔記(임제혜조선사탑기).


師諱義玄(사휘의현)이니
曹州南華人也(조주남화인야)이요
俗姓刑氏(속성형씨)니라

幼而頴異(유이영이)하고
長以孝聞(장이효문)하니라

及落髮受具(급락발수구)하야는
居於講肆(거어강사)하야
精究毘尼(정구비니)하고
博頤經論(박색경론)이러니
俄而歎曰(아이탄왈)
此濟世之醫方也(차제세지의방야)요
非教外別傳之旨(비교외별전지지)로다

即更衣游方(즉갱의유방)하야
首參黄蘗(수참황벽)하고
次謁大愚(차알대우)하니
其機縁語句(기기연어구)는
載于行録(재우행록)하니라

既受黄蘗印可(기수황벽인가)하고
尋抵河北(심저하북)하야
鎭州城東南隅(진주성동남우)에
臨滹沱河側(임호타하측)하야
小院住持(소원주지)하니
其臨濟(지임제)는
因地得名(인지득명)이니라

時普化先在彼(시보화선재피)하야
佯狂混衆(양광혼중)하니
聖凡莫測(성범막측)이라
師至即佐之(사지즉좌지)하야
師正旺化(사정왕화)에
普化全身脱去(보화전신탈거)하니
乃符仰山小釋迦之懸記也
(내부앙산소석가지현기야)니라

適丁兵革(적정병혁)하야
師即棄去(사즉기거)하니
太尉默君和(대위묵군화)가
於城中(어성중)에
捨宅爲寺(사택위사)하니
亦以臨濟爲額(역이임제위액)하고
迎師居焉(영사거언)하니라

後拂衣南邁(후불의남매)하야
至河府(지하부)하니
府主王常侍(부주왕상시)가
延以師禮(연이사례)하니
住未幾(주미기)에
即來大名府興化寺
(즉래대명부흥화사)하야
居于東堂(거우동당)하니라

師無疾(사무질)하고
忽一日(홀일일)에
攝衣據坐(섭의거좌)하야
與三聖問答畢(여삼성문답필)하고
寂然而逝(적연이서)하니
時唐咸通八年丁亥
(시당함통팔년정해)
孟陬月十日也(맹추월십일야)니라

門人以師全身(문인이사전신)으로
建塔于大名府西北隅
(건탑우대명부서북우)하니
勅謚慧照禪師(칙시혜조선사)요
塔號澄靈(탑호징령)이라

合掌稽首(합장계수)하야
記師大略(기사대략)하노라


住鎭州保壽嗣法小師 延沼謹書
(주진주보수사법소사 연소근서)하고

住大名府興化嗣法小師 存獎校勘
(주대명부흥화사법소사 존장교감)하다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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