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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 3-22. 오무간 지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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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6-08 05:33 조회1,571회 댓글0건

본문

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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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示衆

오무간 지옥업


묻기를

“오무간업(五無間業)은 무엇입니까?”

임제스님께서 대답하셨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해치면
부처 몸에서 피를 내고
교단의 화합을 파괴하며
경(經)과 불상(佛像)을
불사르는 등이 오무간업이다.”

묻되

“아버지는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되

“무명(無明)이 아버지다.
너의 한 생각 마음이
일어나고 멸해 없어지는 것을
구해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어서
메아리가 허공에 울리는 것과 같아
어느 곳에든지 일이 없는 것을
아버지를 죽인다고 말한다.”

묻기를

“어머니는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탐(貪)하여 사랑하는 것이 어머니다.
너의 한 생각 마음이
욕계(欲界)가운데에 들어가서 활동할 때에
탐하여 사랑하는 것을 구해 보아도
모든 것이 공해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서
어느 곳이든지 집착하지 않는 것을
어머니를 해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묻기를

“부처 몸에서
피를 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청정한 법계 가운데에서
한 생각도 알음알이를 냄이 없어서
바로 어느 곳이든지 깜깜한 것을
부처 몸에서 피를 낸다고 말한다.”

묻기를

“승단화합을 파괴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의 한 생각 번뇌가
허공과 같이 의지할 곳이 없는 데에
바로 도달하는 것을
승단화합을 파괴한다고 말한다.”

묻기를

“경(經)과 불상을
불사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인연이 공하고
마음이 공하고 법이 공한 이치를 보고서
한 생각을 결정해 버려서
일체를 초월하여 일이 없는 것이
바로 경(經)과 불상을 불사른다는 뜻이다.

도를 배우는 여러분,
만일 이와 같이 깨칠 수 있으면
저 법부니 성인이니
하는 이름에 구애되는 것을 면한다.

그대의 한 생각이
오로지 빈주먹과
달 가리키는 손가락 위에
실제로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알음알이를 내며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의
세계 가운데서 헛되이 망상을 피운다.

그리고
자신을 열등시(劣等時)하고
비굴(卑屈)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나는 범부(凡夫)이고
저 사람은 성인(聖人)이다’ 라고 한다.

머리 깎은 어리석은 놈아,
무엇을 그렇게
황급(遑急)하게 정신(淨神)을 못 차리고
사자 가죽을 덮어 쓰고서
여우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당당한 대장부가
장부의 기개를 갖지 못하고
자기 속에 있는 보배를 잘 받지 않고
오로지 밖을 향하여 구하며,
저 옛 사람의 쓸데없는 말에 팔려서
옳다 그르다 분별하여,
특출하게 뛰어나서 통달하지 못한다.

경계를 만나면
바로 경계에 반연(攀緣)하고
물건(物件)을 만나면 바로 물건에 집착하여
접촉하는 곳마다 미혹(迷惑)함을 내어서
스스로 확호부동(確乎不動)함이 없다.


도를 배우는 여러분,

내가 설한 것에 집착하지 마라.
왜냐하면
내가 설한 것은 의거할 만한 것이 없고
임시로 허공에다가 그림을 그린 것이니
마치 채색화를 그린 그림의 비유와 같은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부처를 가지고 구경(究竟)을 삼지 말라.

내가 보는 것으로 말하면
마치 똥 단지와 같은 것이다.

보살과 나한은
다 죄인이 목에 거는 형틀과 자물쇠다.
사람을 결박하는 물건(物件)이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칼을 잡아 석가모니불을 죽이려 했고
앙굴마라(鴦掘摩羅)는
칼을 가지고 부처님을 해치려 하였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얻을 수 있는 부처는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삼승교(三乘敎)와
오성(五性) 각별(各別)의 교(敎)와
원돈일승(圓頓一乘)의 교의까지도
다 일시의 병을 따라 고치는 약과 같은 것이고
온전히 진실한 법은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여도 모두 가짜다.

보고판(報告板)같은 것이고
문자를 질서 있게 벌여놓은 것이어서
오직 그렇게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어떤 승려들은
바로 속으로 향하여 노력하여서
출세간(出世間)의 불법(佛法)을 구하려 한다.

그러나 잘못이다.

만일 사람이 부처를 구하면
그 사람은 부처를 잃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도를 구하면
그 사람은 도를 잃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조사(祖師)를 구하면
그 사람은 조사를 잃을 것이다.

여러분은 잘못하지 마라.

나는 그대들이
경(經)과 논(論)을
이해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대들이
국왕이나 대신이라고 해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대들이
폭포(瀑布)를 쏟듯
웅변(雄辯)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그대들의 총명한 지혜를 인정(認定)하지 않는다.

오직 그대들에게
진정한 견해를 요망(要望)할 뿐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설사 백부(百部)의
경(經)과 논(論)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하여도
한 사람의 일 없는 스님에게 미치지 못한다.

그대들이 아는 것이 있으면
바로 다른 사람을 경멸하여
승부를 다투는 아수라가 된다.

그래서 나다 너다 하는
깜깜한 마음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악업을 더욱 짓는다.

선성비구(善星比丘)는
팔만사천법문을 이해하였지만
산 채로 지옥에 떨어져서
대지(大地)도 용납할 수 없었다.

일 없이 조작(造作)함이 없이,
쉬어버리는 것이 제일이다.

옛 사람은
‘배고프면 밥 먹고 잠이 오면 잠 잔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알아준다.’
고 노래했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여,

문자 가운데서 구하지 마라.
구하는 마음이 동하면
피로하게 되고 찬 기운만 마셔서 이익이 없다.

한 생각 연기(緣起)로 된
모든 법은 본래 날 것도 없는 줄 깨달아서
삼승(三乘)의
방편설(方便說)을 배우는 보살을
초월하는 것이 제일이다.

사람들이여,
우물쭈물 날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나도 옛날에
깨닫지 못했을 때에 깜깜하고 아득했었다.

광음(光陰)을 헛되이 보낼 수가 없어서
뱃속엔 불이 나고
마음은 바빠서 부산하게 도를 찾아 물었다.

그러한 후에
훌륭한 선지식의 법력(法力)을 입어서
비로소 오늘 여러분과
이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도를 배우는 여러분에게 권(勸)하노라.

의식을 위해서 살지 마라.

보라,
‘이 세상은 쉽게 지나가 버리고
선지식은 만나기가 어렵다’
는 말은
우담화(優曇華)가
삼천 년 만에 한 번 꽃피는 것과 같이
희유함을 가리킴이다.

그대들은 제방(諸方)에서
임제라는 늙은 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와 가지고서 바로
문답(問答)하여
내가 말문이 꽉 막히게 하려 한다.

그런데 내가 전체작용(全體作用)을 하면
도를 배우는 사람은
눈만 부질없이 뻔히 뜨고
입은 도무지 움직이지 못한다.
멍하니
어떻게 나에게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저에게 말한다.

‘큰 코끼리가 힘껏 밟는 것을
나귀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대들은 여러 곳에서
다만 가슴을 가리키고 갈빗대를 두드리면서,
‘나는 선(禪)을 잘 알고 도(道)를 잘 안다’
고 말하나
두 사람 세 사람이
여기에 와서는 어찌 할줄을 모른다.

이 어리석은 놈아.
그대들은 이 훌륭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서
도처에 입을 까불어서 착한 여러 사람을 속인다.

염라대왕의
철봉(鐵棒)을 얻어맞을 날이 꼭 올 것이다.

출가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없다.
모두 아수라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구경궁극(究竟窮極)의 진리인 불도는
논쟁을 해서
위세당당하게 선전을 하고
소리를 높이 해서
외도를 꺾어 항복받을 필요가 없다.

역대 불조(佛祖)가
서로 전해 이어 내려온 것도
도무지 특별한 뜻은 없다.

설사 말과 가르침이 있지마는
이것은 삼승(三乘)이라든가
오성(五性)이라든가
인간계 천상계의 인과 세계가
교화(敎化) 의식(儀式)의 필요로 이룩한 것이다.

그런데
대승최고(大乘最高)의
원돈교(圓頓敎)는 절대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선재동자는
53선지식에게 법을 구해 돌아다닌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잘못된 용심(用心)을 하지 마라.


큰 바다가
죽은 송장을 머물러 두지 않는 것과 같이 하라.

오로지 죽은 송장 같은
알음알이 말 가르침의 짐을 짊어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려고 하여
스스로 진정한 견해의 장해(障害)를 만들어서
마음이 자유자재 함을 잃어버린다.

태양 위에 구름이 없으면
화창한 하늘을 두루 비추고
눈에 눈병이 없으면 허공 속에 허공꽃이 없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아,

그대들이 여법함을 얻으려면
다만 의심을 내지 마라.

‘펼치면 법계를 두루 휩싸고,
거두면 실터럭만한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역력(歷歷)히
자기 자신이 홀로 밝아서
한 번도 부족함이 없었다.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한다.

무슨 물건이라고 부르겠느냐?

옛 사람이 말하기를
‘한 물건이라도 말해도 맞지 않는다.’
고 했다.

그대들이 다만 자기 스스로 보라.
이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리 말해도 한정(限定)이 없다.

각자가 힘써라. 진중(珍重)하라.”


< 착어(着語) >

來過塗毒鼓하고
收得返魂香이로다.
鑽天新鷂子가 不變旧時窠로다.

독을 바른 북을 와서 치고
혼을 돌이키는 향을 거두도다.

하늘을 찌르는 듯
나는 옛둥지를 생각하지 아니하도다.


※※※ 주 ※※※※※※※※※※※※※

1)오무간업(五無間業) :
무간지옥에 떨어지는 오역죄(五逆罪)를 들어서
임제스님은 반대로
오대죄(五大罪)를 범함으로
참 해탈자유(解脫自由)를 얻는다는
독자(獨自)의 견해를 전개함.

2)결사(結使) :
사람을 미(迷)의 세계에 맺어서
구사(驅使)하는 뜻이니 번뇌의 다른 이름.

3)인연공심공법공(因緣空心空法空) :
심공(心空)은
인공(人空) 또는 아공(我空)이니
인간의 자기(自己)에는
실체인 자아는 없다는 입장.
법공(法空)은 존재하는 식법(識法)이
인연으로 성립하여 실체가 없다는 입장.
인연공(因緣空)은
인(人)과 법이 구공(俱空)하다는 뜻.

4)유심사급(有甚死急) :
심(甚)은 무슨의 뜻.
사급(死急)은 아주 대단히 긴급하다는 뜻.

5)의음박양(倚陰博陽) :
음(陰)에 의지하고 양(陽)에 붙는 뜻.
분별하는 마음은
선악(善惡), 시비(是非),
미추(美醜), 대소등(大小等),
모순(矛盾), 상대되는 것을 사량(思量)하므로
이 이성적작용(理性的作用)을
음양(陰陽)에 의지(依支)해서 작용하는 것으로
표현(表現)하였음.

6)문수장검(文殊仗劍) :
**보적경(寶積經)**에 있는 고사.
불타(佛陀)의 제자들이
부처의 계율에 집착하여 죄의식에 사로잡혀
괴로워함을 구하려고
문수가 칼을 가지고 부처를 살해하려고 한 이야기.

7)구담(瞿曇) : 석존(釋尊)의 성(姓).

8) 앙굴(鴦掘) :
**앙굴마라경(鴦掘摩羅經**에 있는 고사.
지만외도(指鬘外道)라고 역함.
앙굴리마라라는
외도가 천인(千人)의 손가락을 끊어서
목걸이를 만들려다가
천인을 채울 차례에
석존을 만나 개심귀의했다는 이야기.

9)삼승오성(三乘五性) :
삼승(三乘)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오성(五性)은
법상종에서 중생이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는 성질이니
보살정성(菩薩定性), 연각정성(緣覺定性),
성문정성(聲聞定性), 삼승부정성(三乘不定性),
무성유정(無性有情)이다.

10)원돈지교(圓頓之敎) :
대승최상(大乘最上)의 교(敎).

11)개시상사운운(皆是相似云云) :
상사(相似)는
모주(模做) 모조(模造)의 뜻.
노포(路布)는 노포(露布)니
본래(本來) 전승(戰勝)을 고하는 플랭카드.

12)향이허착공(向裏許著功) :
허(許)는 접미사이니
이허(裏許)는 안, 내면, 내부,
착공(著功)은
착력(著力)과 같음. 잔뜩 힘을 써서 노력하는 것.

13)일기간도화허공 여채화상등
(一其間圖畵虛空 如彩畵像等) :
화가가 여러 가지로
그림 그려서 보이는 비유이니
부처님 설법도
본래 일정한 형식이 없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여러 가지 형식으로 거짓 보인다는 얘기가
**능엄경**과
**열반경**의 고귀덕왕품(高貴德王品)에 있다.

14)선성비구(善星比丘) :
**열반경**
가화보살품(迦華菩薩品)에 있는 이야기.
선성비구는
널리 경론(經論)을 이해하였으나
자기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악우(惡友)를 가까이해서
마침내 지옥에 떨어졌다 함.

15)기래끽반운운(飢來喫飯云云) :
남악회양(南嶽懷讓 677~744) 선사의
낙도가(樂道歌).

16)득력(得力) :
당대(唐代)에는 사람 덕택(德澤)을 입었다는 뜻.

17)우담화운운(優曇華云云) :
우담바라화(優曇波羅華).
3천년만에
한 번 꽃이 핀다고 하며 희유하다는 비유.

18)제방문도운운(諸方聞道云云) :
문도(聞道)란 그냥 듣는다는 말.
언도(言道) 지도(知道), 신도(信道) 등의 예와 같음.

19)용상축답운둔(龍象蹴踏云云) :
용상(龍象)은
코끼리 중에서 가장 훌륭한 코끼리.

20)지흉점륵(指胸點肋) :
자부(自負) 자신(自信)을 보이는 형용.

21)여염(閭閻) :
여염은 촌리(村里)의 문(門).
여기에서는 서민의 뜻.

22)갱장(鏗鏘) :
갱(鏗)은 금석(金石)의 성(聲).
장(鏘)은 옥(玉)의 성(聲).
소리를 크게 해서 논란(論難)하는 것.

23)개불구과(皆不求過) :
**화엄경**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역방구도(歷訪求道)한 것은
삼승(三乘) 오성(五性) 등의
계단적 수행을 설(說)하는 화의법문(化儀法門)을
구하여 순례한 것이 아니고
일념(一念)에
삼승권학(三乘權學)을 초월(超越)한
원돈일승(圓頓一乘)의 교법을 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재는 밖으로 법을 구한 것이 아니고
본구(本具)의 자기심법(自己心法)을
각(覺)한 것이므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지나서
53 선지식을 순례했지만,
그 53인 한 사람도
밖으로 구하여 간 것이 아니라는 뜻.

24)전특미륜법계운운(展則彌綸法界云云) :
우두법융(牛頭法融)의
**절관론(絶觀論)**의 구(句).

25)안불견이불문운운
(眼不見耳不聞云云) :
배도선사(杯渡禪師)의
**일발가(一鉢歌)의 구(句).

26)고인운 설사일물즉부중
(古人云 說似一物則不中) :
남악회양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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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문),
如何是五無間業(여하시오무간업)고?

師云(사운),
殺父害母(살부해모)하며
出佛身血(출불신혈)하며
破和合僧(파화합승)하며
焚燒經像等(분소경상등)이
此是五無間業(차시오무간업)이니라.

云(운),
如何是父(여하시부)오?

師云(사운),
無明是父(무명시부)니
儞一念心(이일념심)이
求起滅處不得(구기멸처부득)하야
如響應空(여향응공)하야
隨處無事(수처무사)를
名爲殺父(명위살부)니라.

云(운),
如何是母(여하시모)오?

師云(사운),
貪愛爲母(탐애위모)니
儞一念心(이일념심)이
入欲界中(입욕계중)하야
求其貪愛(구기탐애)하나
唯見諸法空相(유견제법공상)하야
處處無着(처처무착)을
名爲害母(명위해모)니라.

云(운),
如何是出佛身血(여하시출불신혈)고?

師云(사운),
儞向淸淨法界中(이향청정법계중)하야
無一念心生解(무일념생해)하고
便處處黑暗(변처처흑암)이
是出佛身血(시출불신혈)이니라.

云(운),
如何是破和合僧(여하시파화합승)고?

師云(사운),
儞一念心(이일념심)이
正達煩惱結使(정달번뇌결사)하야
如空無所依(여공무소의)가
是破和合僧(시파화합승)이니라.

云(운),
如何是焚燒經像(여하시분소경상)고?

師云(사운),
見因緣空心空法空
(견인연공심공법공)하야
一念決定斷(일념결정단)하야
逈然無事(형연무사)가
便是焚燒經像(변시분소경상)이니라.


大德(대덕)아

若如是達得(약여시달득)하면
免被他凡聖名礙(면피타범성명애)니라.
儞一念心(이일념심)이
祇向空拳指上生實解
(지향공권지상생실해)하며
根境法中虛捏怪(근경법중허날괴)하야
自輕而退屈言(자경이퇴굴언)하되
我是凡夫(아시범부)요.

他是聖人(타시성인)이라하니
禿屢生(독누생)이여,
有甚死急(유삼사겁)하야
披他師子皮(피타사자피)하야,
却作野干鳴(각작야간명)고?

大丈夫漢(대장부한)이
不作丈夫氣息(부작장부기식)하야,
自家屋裏物(자가옥리물)을
不肯信(불긍신)하고,
祇麽向外覓(지마향외멱)하야
上他古人閒名句(상타고인한명구)하야
倚陰博陽(의음박양)하야,
不能特達(불능특달)이라.

逢境便緣(봉경변연)하며
逢塵便執(봉진변집)하야
觸處惑起(촉처혹기)하야,
自無准定(자무준정)이로다.

道流(도류)야,
莫取山僧說處(막취산승설처)하라.

何故(하고)오?
說無憑據(설무빙거)하야
一期間圖畫虛空(일기간도화허공)이요,
如彩畫像等喩(여채화상등유)니라.


道流(도류)야

莫將佛爲究竟(막장불위구경)하라.

我見猶如厠孔(아견유여측공)이요,
菩薩羅漢(보살나한)은
盡是枷鎖(진시가쇄)며
縛人底物(박인저물)이니
所以(소이)로,
文殊仗劍(문수장검)하야
殺於瞿曇(살어구담)하며,
鴦掘持刀(앙굴지도)하야
害於釋氏(해어석씨)니라.


道流(도류)야

無佛可得(무불가득)이니,
乃至三乘五性(내지삼승오성)과
圓頓敎迹(원돈교적)은
皆是一期藥病相治
(개시일기약병상치)요,
並無實法(병무실법)이니라.

設有(설유)라도
皆是相似表顯路布(개시상사표현노포)며,
文字差排(문자차배)하야
且如是說(차여시설)이니라.

道流(도류)야,

有一般禿子(유일반독자)하야
便向裏許著功(변향리허착공)하야
擬求出世之法(의구출세지법)하니
錯了也(착요야)라.
若人求佛(약인구불)하면
是人失佛(시인실불)이요,
若人求道(약인구도)하면
是人失道(시인실도)요,
若人求祖(약인구조)하면
是人失祖(시인실조)니라.


大德(대덕)아

莫錯(막착)하라.
我且不取儞解經論
(아차불취이해경론)하며
我亦不取儞國王大臣
(아역불취이국왕대신)하며,
我亦不取儞辯似懸河
(아역불취이변사현하)하며,
我亦不取儞聰明智慧
(아역불취이총명지혜)하고,
唯要儞眞正見解
(유요이진정견해)니라.


道流(도류)야,

設解得百本經論
(설해득백본경논)하여도
不如一箇無事底阿師
(불여일개무사저아사)니
儞解得(이해득)하면
卽輕懱他人(즉경멸타인)하야,
勝負修羅(승부수라)와
人我無明(인아무명)이
長地獄業(장지옥업)이니라.

如善星比丘(여선성비구)가
解十二分敎(해십이분교)호되,
生身陷地獄(생신함지옥)하야
大地不容(대지불용)하니,
不如無事休歇去(불여무사휴헐거)니라.

飢來喫飯(기래긱반)이요
睡來合眼(수래합안)이라,
愚人笑我(우인소아)나
智乃知焉(지내지언)이로다.


道流(도류)야,

莫向文字中求(막향문자중구)니
心動疲勞(심동피로)하고
吸冷氣無益(흡냉기무익)하니,
不如一念緣起無生
(불여일념연기무생)하야
超出三乘權學菩薩
(초출삼승권학보살)이니라.


大德(대덕)아,

莫因循過日(막인순과일)하라.

山僧往日(산승왕일)
未有見處時(미유견처시)에
黑漫漫地(흑만만지)라.

光陰(광음)을 不可空過(불가공과)니
腹熱心忙(복열심망)하야
奔波訪道(분파방도)하야,
後還得力(후환득력)하야
始到今日(시도금일)하야,
共道流如是話度(공도류여시화도)니라.

勸諸道流(권제도류)하노니
莫爲衣食(막위의식)하라.
看世界易過(간세계이과)하며
善知識難遇(선지식난우)니,
如優曇華(여우담화)가
時一現耳(시일현이)니라.

儞諸方(이제방)이
聞道有箇臨濟老漢
(문도유개임제노한)하고,
出來便擬問難(출래변의문난)하야
敎語不得(교어부득)타가,
被山僧全體作用
(피산승전체작용)하야,
學人空開得眼(학인공개득안)이나
口總動不得(구총동부득)하고,
懵然不知以何答我
(몽연부지이하답아)하니
我向伊道(아향이도)호되
龍象蹴踏(용상축답)은
非驢所堪(비려소감)이로다.

儞諸處(이제처)에
祇指胸點肋(지지흉점늑)하야,
道我解禪解道(도아해선해도)하나
三箇兩箇(삼개양개)가
到這裏(도자리)하야,
不奈何(불내하)하니
咄哉(돌재)라.

儞將這箇身心(이장자개신심)하야,
到處簸兩片皮(도처파양편피)하야
誑諕閭閻(광하여염)하니,
喫鐵棒有日在(긱철방유일재)로다.

非出家兒(비출가아)요
盡向阿修羅界攝(진향아수라계섭)이니라.


夫如至理之道(부여지리지도)는
非諍論而求激揚(비쟁논이구격양)이며
鏗鏘以摧外道(견장이최외도)니라.

至於佛祖相承
(지어불조상승)하야는
更無別意(갱무별의)요,
設有言敎(설유언교)라도
落在化儀三乘五性人天因果
(낙재화의삼승오성인천인과)니라.

如圓頓之敎(여원돈지교)는
又且不然(우차불연)하야
善財童子(선재동자)가
皆不求過(개불구과)니라.


大徳(대덕)아

莫錯用心(막착용심)하라
如大海不停死屍(여대해부정사시)니라

秖麼擔却(지마담각)하야
擬天下走(의천하주)하나니
自起見障(자기견장)하야
以礙於心(이애어심)이라

日上無雲(일상무운)하니
麗天普照(여천보조)요
眼中無翳(안중무예)하니
空裏無花(공리무화)로다


道流(도류)야

儞欲得如法(이욕득여법)이면
但莫生疑(단막생의)하라

展則彌綸法界(전즉미륜법계)하고
收則絲髮不立(수즉사발불립)하야
歴歴孤明(역력고명)하야
未曾欠少(미증흠소)니라

眼不見耳不聞(안불견이불문)이니
喚作什麼物(환작십마물)고

古人云(고인운),
説似一物(설사일물) 이라도
則不中(즉부중)이라하니
儞但自家看(이단자가간)하라

更有什麼(갱유십마)오

説亦無盡(설역무진)이니
各自著力(각자착력)하고
珍重(진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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