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 연의/ 3-17. ~임제의 일용처 > 자료실

본문 바로가기
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 3-17. ~임제의 일용처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6-03 05:33 조회1,349회 댓글0건

본문

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

3장 示衆

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 임제의 일용처


“도를 배우는 여러분,
나의 불법은
분명히 정통을 서로 이어온 것이다.

마곡화상(麻谷和尙),
단하화상(丹霞和尙),
도일화상(道一和尙),
여산화상(廬山和尙),
석공화상(石鞏和尙)들은
똑같이
조사도(祖師道)를 행하여 천하에 두루 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고 무두 비방만 한다.

도일화상(道一和尙)의 활동하는 경지는
순일(純一)하여 잡(雜)됨이 없다.
그 회하(會下)에서 도를 배우는
삼백, 오백 명의 사람들이
마조스님의 참뜻을 알지 못하였다.

여산화상은
자유자재하게 활동하되
참되고 바른 것을 잃지 않았다.
순(順)하여 작용하고, 거슬려서 작용하되
학인은
그 경지를 측량하지 못하고 다 멍할 뿐이었다.

단하화상은
구슬을 놀리되
숨기기도 하고 나타내기도 한다.
학인이 오면 모두 꾸짖었다.

마곡(麻谷)이 작용(作用)하는 경지는
고(苦)가 황벽과 같아서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석공(石鞏)이 작용하는 경지는
화살 끝에서 사람을 찾으므로
오는 사람이 다 무서워했다.

내가 오늘 작용하는 경지는
참되고 바르게 이룩하고 무너뜨려서
신묘하게 변화함을 자유자재하게 놀린다.

모든 경지에 들어가도
곳곳마다 일이 없어서
어떠한 경계라도 나의 경지를 바꿀 수 없다.

다만 와서 구하는 자에게는
나는 바로 나가서 저를 보지만
저는 나를 알지 못한다.

내가 몇 가지 옷을 입으면
학인은 거기에 알음알이를 내고
오로지 내 말과 글귀에 집착한다.

딱하나 눈먼 승려는
내가 입은 옷에 집착하여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줄로 안다.

내가 벗어버리고
청정한 경계 가운데로 들어가면
학인은 한번 보고는 바로 기쁜 생각을 낸다.

내가 또 옷을 벗어버리면
학인은 마음을 잃고 멍하니
제 정신 없이 미쳐 달아나면서
내가 옷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바로 저에게 말하되
‘그대가 나의 옷 입는 사람을 아느냐?’
하면
저가 홀연(忽然)히
머리를 멀리고서 나를 알아버린다.

대덕이여,
그대들은 옷에 집착하지 마라.
옷은 자기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이므로
사람이 옷을 입을 수가 있는 것이다.

정한 옷이 있고
남이 없는[無生]의 옷이 있고
보리의 옷이 있고
열반의 옷이 있고
조사(祖師)의 옷이 있고
부처의 옷이 있다.

모든 음성과 이름 문구(文句)는
다 옷이 변한 것이다.

배꼽 아래 기해(氣海)로부터 진동하고
이빨이 서로 부딪쳐서
그 글귀가 되고 글귀의 뜻을 이룬다.

이것이 환화(幻化)인 것이 분명하다.

대덕이여,
음성과 말이 행위를 밖으로 발하고
마음의 작용을 안으로 나타낸다.

안의 생각으로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다 옷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오로지
자기가 입는 옷에 집착하여
참의 알음알이를 지으면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어도
다만 껍데기 옷을 이해함이다.

삼계에 돌아다니고 생사를 되풀이 하게 된다.

일없이 하는 것이 제일 훌륭한 것이다.

서로 만나도 서로 알지 못하고
같이 말해도 서로 이름을 알지 못한다.”


< 착어(着語) >

見與師齊하면 滅師半德하고
見過於師하야사 方堪傳授니라.
然이나 畢竟沒交涉이니
三脚蝦蟆는 飛上天이로다.

견해가 스승으로 더불어 같으면
스승은 반덕(半德)을 멸(滅)하고
견해가 스승보다 지나야만
바야흐로 견디어 전(傳)해 줄만 하니라.

그러나
마침내는 교섭이 끊어지니
세 다리의 두꺼비는
날아서 하늘로 올라가도다.


※※※ 주 ※※※※※※※※※※※※※

1) 종마곡화상운운(從麻谷和尙云云) :
여기에서 말하는 선사(禪師)들의 법계는
다음과 같다
~~~표~~~~
육조(六組)
남악회양(南嶽懷讓) 청원행사(靑原行思)
마조도일(馬祖道一) 석두희천(石頭希遷)
석공혜장
(石鞏慧藏)
귀종지상
(歸宗智常/廬山拽石)
마곡보철
(麻谷寶徹)
단하천연(丹霞天然)

2) 향전두상멱인(向箭頭上覓人) :
석공(石鞏)이 무릇 상당(上堂)에
활(弓)을 당기고 할(喝)을 이르되
화살을 보라.
이와 같이 30년을 하더니
어느날 삼평(三平)이 듣고
바로 좌하(座下)에 이르러서
문득 가슴을 헤쳐 열거늘
사(師)가 문득 활을 놓으니
평(平)이 이르되
“이것은 오히려
이 살인전(殺人箭)이어니와
어떤 것이 이 활인전(活人箭)입니까?”
사(師)가 활줄을 세 번 튕기니
평(平)이 문든 예배(禮拜)를 했다.
사(師)가 이르되
“30년(三十年)동안 활 하나를 당겨
화살 두 개를 쏘았는데(一張弓兩下箭),
今日에 반개성인(半介聖人)을 쏘았다.”고 했다.

3) 진정성괴 완룡신변
(眞正成壞 翫弄神變) :
살활자재(殺活自在)의 뜻.


++++++++++++++++++++++++++++


道流(도류)야

山僧佛法(산승불법)은
的的相承(적적상승)하야
從麻谷和尙(종마곡화상)과
丹霞和尙(단하화상)과
道一和尙(도일화상)과
廬山與石鞏和尙(여산여석공화상)하야,

一路行徧天下(일로행변천하)하나
無人信得(무인신득)하고
盡皆起謗(진개기방)이로다
如道一和尙用處(여도일화상용처)는
純一無雜(순일무잡)이라.

學人三百五百(학인삼백오백)이
盡皆不見他意(진개불견타의)요,
如廬山和尙(여여산화상)은
自在眞正(자재진정)하니
順逆用處(순역용처)를
學人不測涯際(학인불측애제)하고
悉皆忙然(실개망연)이요.

如丹霞和尙(여단하화상)은
翫珠隱顯(완주은현)하야
學人來者(학인래자)가
皆悉被罵(개실피매)요.
如麻谷用處(여마곡용처)는
苦如黃檗(고여황벽)하야
皆近不得(개근부득)이요.

如石鞏用處(여석공용처)는
向箭頭上覓人(향전두상멱인)하니
來者皆懼(내자개구)로다.


如山僧今日用處(여산승금일용처)는
眞正成壞(진정성괴)하며
翫弄神變(완농신변)하야
入一切境(입일체경)호대
隨處無事(수처무사)하야
境不能換(경불능환)이니라.
但有來求者(단유래구자)하면
我卽便出看渠(아즉변출간거)하나
渠不識我(거불식아)일새.

我便著數般衣(아변착수반의)하면
學人生解(학인생해)하야
一向入我言句(일향입아언구)하나니
苦哉(고재)라.

瞎禿子無眼人(할독자무안인)이
把我著底衣(파아착저의)하야
認靑黃赤白(인청황적백)이로다.

我脫却(아탈각)하고
入淸淨境中(입청정경중)하면
學人一見(학인일견)하고
便生忻欲(변생흔욕)타가
我又脫却(아우탈각)하면
學人失心(학인실심)하야
忙然狂走(망연광주)하야
言我無衣(언아무의)로다.

我卽向渠道(아즉향거도)호되
儞識我著衣底人否
(이식아착의저인부)아하면
忽儞回頭(홀이회두)하야
認我了也(인아요야)로다.


大德(대덕)아

儞莫認衣(이막인의)하라.
衣不能動(의불능동)이요
人能著衣(인능착의)하나니
有箇淸淨衣(유개청정의)하며,

有箇無生衣(유개무생의)와
菩提衣(보리의)와
涅槃衣(열반의)하며
有祖衣有佛衣(유조의유불의)니라.

大德(대덕)아

但有聲名文句(단유성명문구)하야
皆悉是衣變(개실시의변)이라.

從臍輪氣海中鼓激
(종제륜기해중고격)하야
牙齒敲磕(아치고개)하야
成其句義(성기구의)니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니라.

大德(대덕)아

外發聲語業(외발성어업)하며
內表心所法(내표심소법)하고
以思有念(이사유념)은
皆悉是衣(개실시의)니,

儞祇麽認他著底衣爲實解
(이지마인타착저의위실해)하면
縱經塵劫(종경진겁)하야도
祇是衣通(지시의통))이라.

三界循環(삼계순환)하야
輪廻生死(윤회생사)하나니
不如無事(불여무사)니라.

相逢不相識(상봉불상식)하고
共語不知名(공어부지명)이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57205 전남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종무소 - Tel : 061-392-7502 / Fax : 061-392-2081

기도접수처 - Tel : 061-392-0100 / Fax : 061-392-1143   템플스테이 - Tel : 061-392-0434

Copyright © 2020 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