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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서옹스님

임제록 연의/ 3-14.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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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양사 작성일21-05-31 05:30 조회1,414회 댓글0건

본문

서옹스님의 [ 임제록 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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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示衆

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 임제의 경계 2


“도 닦는 여러분,
선종의 견해로는
죽음과 삶이 동일하면서 분명히 다르다.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이 점을 대단히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주인과 객이 서로 만나볼 적에
서로 문답하는 말을 주고받고 한다.

혹은 물건에 응하여 형상을 나툰다.
혹은 전체작용(全體作用)한다.
혹은 방편으로 건드려 보려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혹은 본성을 나투어 보이기도 한다.
혹은 사자를 타고
문수보살의 경지(境地)를 나툰다.
혹은 코끼리를 타고
보현보살 경지를 나툰다.

만일 진정하게 참선하는 사람이
선지식을 보고서
바로 할을 하여
먼저 한 개의 아교풀 담은 그릇을 내놓는다면
선지식은 이것이 경계인 줄 모르고
바로 그 경계에 매달려서
여러 가지 모양을 조작한다.

이것을 본 참선하는 사람은
바로 할을 한다.
그래도 선지식은
절대로 놓아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고칠 수 없는 큰 병이며 치료할 수가 없다.

이것을
객이 주인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경우에는
참선하는 사람인 객이 눈이 밝고
선지식인 주인은 눈이 어둡다 하겠다.

혹은 선지식이
자기 스스로 물건을 내놓지 않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묻는 것을 따라서 즉시 빼앗아 버린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빼앗겨 버리고도 죽음을 무릅쓰고 놓지 않는다.

이것은
‘주인이 객을 봄’ 이라고 말한다.

주인인 선지식은 눈이 밝고
도를 배우는 객은 눈이 어두운 경우이다.

혹은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개의 청정한 경계를 가지고서
선지식 앞에 나온다.

선지식은
이것이 경계인 줄 알아버리고
빼앗아 가지고 구렁찰 속에 내던져 버린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말하기를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입니다.’한다.

선지식은 즉시 말하기를
‘이놈아
아무 조백도 모르는 구나’하고 한다.

그러면
도를 배우는 사람은 바로 예배를 한다.

이것은 ‘주인이 주인을 봄’이라고 말한다.

선지식도 눈이 밝고
도를 배우는 사람도 눈이 밝다고 말하겠다.

혹은 도를 배우는 사람이
여러 가지 교리라든가,
수행과 깨달음 같은 복잡한 것을 가지고서
목이 칼에 베듯
손발을 자물쇠로 결박하듯 해가지고서
선지식 앞에 나온다.

선지식은 다시 칼과 자물쇠로
도를 배우는 사람을 덮어씌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감사하다고 기뻐 날뛰다.

이것은
선지식이나 도를 배우는 사람이나
둘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객이 객을 봄’이라고 말한다.

선지식도 눈이 멀고
도를 배우는 사람도 눈이 먼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여,

내가 이와 같이
여러 가지를 들어 말하는 것은
모두
마구니를 분별하고 이단을 가려내서
정법(正法)과
사법(邪法)을 분명히 알리기 위하여서이다.”


< 착어(着語) >

一坑埋却하야사 方始天下泰平이니라.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야만
바야흐로 비로소 천하가 태평하다.


※※※ 주 ※※※※※※※※※※※※※

1) 사활순연(死活循然) :
“아사히나 소우겐선사(朝此奈宗源禪師)는
생(生)도 일시(一時)의 위(位),
사(死)도 일시(一時)의 위(位)이다”
라고 말하고
아키츠키 료민교수(秋月龍珉敎授)는
응물현형운운(應物現形云云)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혹(惑)은 살리고 혹(惑)은 죽여서
사활작약(死活作略)을 차제(次第)로 행(行)하여
그 문답(問答)에 차제(次第)가 있고
기도(起倒)가 있는 뜻인가 했다.

그러나 나는
사활순연(死活循然)은
사활쌍쌍(死活雙雙)으로 보나니
사활(死活)이 동일하면서
분명히 사(死)와 활(活)이 다른 것이다.

2) 전체작용(全體作用) :
탈체현용(脫體現用)
또는 대기대용(大機大用)과 같다.

3) 파기권희로(把機權喜怒) :
본래희(本來喜)가 없는 무심의 경지에서
교화상(敎化上) 권도(權道) 방편(方便)으로
희로(喜怒)하여 보이는 것.

4) 혹승사자운운(惑乘獅子云云) :
사자(獅子)를 타는 것은 문수보살(文殊菩薩),
상왕(象王)을 타는 것은 보현보살(普賢菩薩),
문수는 근본지(根本智),
보현(普賢)은 차별지(差別智)를 말함이니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말 한 것과 같이
문수는 이(理)에 당하고 보현은 행(行)에 당한다.

5) 교분자(膠盆子) :
아교풀을 담은 그릇,
끈적끈적 붙어서
사람의 자유를 구속함을 비유한것.

6) 고황지병(膏肓之病) :
고(膏)는 심장의 하부.
황(肓)은 흉막의 상부이니
여기에 든 병은 불치라고 말했다.

7) 저사(抵死) :
저사위한(抵死爲限)의 약.
죽기를 작정하고 굳세게 저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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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도류)야
如禪宗見解(여선종견해)는
死活循然(사활순연)하니
參學之人(참학지인)이
大須子細(대수자세)어다.

如主客相見(여주객상견)할새
便有言論往來(변유언론왕래)호대
或應物現形(혹응물현형)하며
或全體作用(혹전체작용)하며
或把機權喜怒(혹파기권희노)하며
或現半身(혹현반신)하며
或乘獅子(혹승사자)하며
或乘象王(혹승상왕)이니라.


如有眞正學人(여유진정학인)이
便喝(변할)하야
先拈出一箇膠盆子(선염출일개교분자)하면,

善知識(선지식)이
不辨是境(불변시경)하고
便上他境上(변상타경상)하야
作模作樣(작모작양)하면

學人便喝(학인변할)에
前人不肯放(전인불긍방)하나니
此是膏盲之病(차시고맹지병)이라.

不堪醫(불감의)니
喚作客看主(환작객간주)니라.


或是善知識(혹시선지식)이
不拈出物(불염출물)하고
隨學人問處(수학인문처)하야
卽奪(즉탈)이라.

學人被奪(학인피탈)에
抵死不放(저사불방)하나니
此是主看客(차시주간객)이니라.


或有學人(혹유학인)이
應一箇淸淨境(응일개청정경)하야
出善知識前(출선지식전)이어든

善知識(선지식)이
辨得是境(변득시경)하고
把得抛向坑裏(파득포향갱리)하면,

學人言(학인언),
大好善知識(대호선지식)이로다.

卽云(즉운),
咄哉(돌재)라
不識好惡(불식호오)로다.

學人便禮拜(학인변예배)하나니

此喚作主看主(차환작주간주)니라.


或有學人(혹유학인)이
披枷帶鎖(피가대쇄)하야
出善知識前(출선지식전)하면
善知識(선지식)이
更與安一重枷鎖(갱여안일중가쇄)라

學人歡喜(학인환희)하야
彼此不辨(피차불변)하나니

呼爲客看客(호위객간객)이니라.

大德(대덕)아
山僧如是所擧(산승여시소거)는
皆是辨魔揀異(개시변마간이)하야
知其邪正(지기사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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